며칠 전 잠실에 갔다. 업무 차 들른 길에 우연히 마주친 광경 하나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어떤 시민이 선거관리위원회 팻말 앞에서 오랫동안 서서 사진을 찍고 있더라.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진지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폰카를 꺼내 들었다. 지난 6월 3일, 뉴스에도 같은 장면이 보도됐는데 이 기사에서 본 그 사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찍은 사진은 바쁜 출근길의 한 장면이었지만, 돌아보며 생각했다. 도시의 풍경은 그냥 지나치는 순간에도 역사의 흔적을 담고 있다는 걸.

사실 나는 도시재생사진을 주로 찍는다. 폐공장, 재개발 지역, 오래된 골목길 같은 곳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 직업이자 취미이지만, 가끔은 이런 시사적인 장면이 더 강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잠실에서 본 그 광경은 단순한 출근길 풍경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순간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사진 한 장이 말해주는 이야기는 때로는 수천 마디 말보다 강력하다.
오늘은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내가 최근 몇 년간 도시 안에서 마주친 인상적인 사진의 순간들을 TOP 5로 정리해보았다. 물론 전문적인 사진은 아니지만, 각각의 장면이 주는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첫 번째, 재개발 지역의 벽화. 서울의 한 낙후된 동네에서 본 벽화는 지역 주민들이 직접 그린 것이다. 오래된 담장 위에 핀 꽃 그림은 곧 사라질 동네의 마지막 자존심처럼 보였다. 나는 그 벽화 앞에서 한참을 서서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할아버지는 “이 벽화가 철거되면 우리 동네의 마지막 추억도 사라지는 것 같아”라며 씁쓸해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욱 집중해서 사진을 찍었다. 실제로 그 동네는 1년 후 완전히 사라졌고, 내 사진은 그곳의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도시재생 현장에서 이런 순간을 자주 마주치지만, 그때마다 카메라의 무게를 새삼 느낀다.
두 번째, 전통시장의 오전 8시. 새벽부터 문을 연 가게들, 물건을 나르는 상인들의 모습은 도시의 생생한 혈류 같았다. 특히 한 할머니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야채를 다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삶의 초상이었다. 그날 나는 시장에서 2시간 넘게 머물렀다. 점심때쯤 되자 손님들이 몰려들었고, 할머니는 바쁜 와중에도 자식처럼 손님을 챙겼다. 통계에 따르면 전통시장의 수는 매년 5%씩 줄고 있지만, 그곳에서 느껴지는 인간미는 대형마트에서 결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내 사진 속 할머니의 주름진 손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이야기였다.
세 번째, 폐공장의 철골 구조. 군포에 있는 옛 공장 터에서 찍은 사진이다. 철골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패턴이 압권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어느 화가의 작품보다 아름다웠다. 이 공장은 1980년대에 문을 닫았는데, 당시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했던 곳이라고 한다. 철골 곳곳에 녹이 슬었지만, 그 위로 드리운 그림자는 마치 과거의 노동자들이 남긴 흔적처럼 보였다. 나는 그날 오후 내내 셔터를 눌렀고, 결과물 중 하나가 지역 사진전에 출품되어 입선하기도 했다. 폐공장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라, 산업화 시대를 증언하는 살아있는 역사다.
네 번째, 선거철 거리의 현수막. 잠실에서 본 그 장면과 비슷하다. 후보자들의 얼굴이 빼곡히 박힌 현수막은 때로는 우스꽝스럽지만, 그 속에서 시민들이 투표함 앞에서 고민하는 모습은 결코 우스꽝스럽지 않다. 선관위 관련 기사에서도 지적했듯, 선거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요한 축제다. 나는 지난 대선 때 서울의 한 투표소 앞에서 하루 종일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선 시민들, 투표를 마치고 나오며 미소 짓는 노부부, 그리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투표를 위해 긴 줄을 기다리는 모습. 그날 찍은 사진 중 하나가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선거 현수막은 그날의 열기를 상징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현수막 아래에서 벌어지는 시민들의 선택에 있다.
다섯 번째, 강릉 해변의 파도. 최근 강릉에서 사진을 찍다가 파도에 휩쓸리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그 기사를 읽으며 문득, 자연의 위엄과 무서움을 동시에 느꼈다. 해변에서 찍은 사진은 항상 아름답지만, 때로는 그 아름다움 뒤에 숨은 위험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도 몇 년 전 강릉 해변에서 사진을 찍다가 큰 파도에 카메라가 젖은 적이 있다. 다행히 사람은 무사했지만, 그 경험 이후로 나는 항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통계에 따르면 매년 해안가에서 사진을 찍다가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무한하지만, 우리의 생명은 유한하다는 것을 사진가로서 항상 명심해야 한다.
사진을 찍는 일은 단순히 셔터를 누르는 행위가 아니라, 그 순간의 의미를 기록하는 작업이다. 도시재생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은 그 지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프레임에 담아낸다. 하지만 잠실에서 본 그 장면처럼, 평범한 일상 속에도 기록할 가치가 있는 순간은 넘쳐난다.
사실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취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특히 도시재생 사진을 찍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예를 들어, 재개발 지역의 주민들은 대부분 자신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아픔을 안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으려 노력한다. 한 번은 재개발 예정지에서 80대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50년 넘게 그 동네에서 살았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이 집이 헐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어줘요”라는 말에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그 사진은 지금도 내 작업실에 걸려 있다.
또한, 사진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다. 잠실에서 찍은 그 사진은 단순한 출근길 풍경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현장을 기록한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2030 세대의 투표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날 잠실에서 본 시민의 모습은 그런 변화를 상징하는 듯했다. 나는 그 장면을 통해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 의지를 느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라서, 누구나 쉽게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기계가 아니라 눈과 마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내가 찍은 그 사진이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한 장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작은 단서가 되었다.
앞으로도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풍경 하나하나를 소중히 담으려 한다. 폐공장의 녹슨 철문이든, 재래시장의 바쁜 아침이든, 아니면 선거철의 현수막 풍경이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진짜 얼굴이니까.